2021년 11월 01일
<자본주의의 적>
[자본주의의 적]
* 이룰 수 없는 꿈인 것을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자는 성실하다.
* "너는 절대 야쿠르트 아줌마가 될 수 없어."
  "왜?"
  "넌 남자잖아." 녀석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한다.
  "그럼 야쿠르트 아저씨"
*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의 부재는 익숙한 것에 대한 애착과 닿아 있다.
* 돈이 많기만 하다면 에르메스고 마놀로블라닉이고 얼마든지 사줄 테다 ... 자본이 축적되어야 자본주의가 가능한 거야. 나는 절대 축적하지 않는다고. 이게 진정한 반 자본주의적 삶 아니냐?
* 좋기는 하지만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이전의 것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는 데 에너지를 쓰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 자폐가족은 자본주의의 동력 그 자체인 욕망을 부정하는 자들이다. ... 자폐가족은 보다 근원적으로 욕망 그 자체가 부재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전원을 오프시킨다.

[검은 방]
* 칡꽃 향기 끈적끈적, 맨살에 엉겨 붙던 여름날이었다.
* 첫걸음 뗀 제 아이보듯, 세상에 다시 없는 다정한 눈길로 더듬고 어루만졌다.
* 빛이라기에는 너무 희미해 빛과 어둠의 경계와 같은, 묽은 어둠을 향해 굼뜨게 몸을 움직인다.

[아하 달]
* 살아 있는 것들은 하나의 시계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때가 되면 발정이 난다.
* 불은 바람을 먹이 삼아 기세 좋게 타오른다.

[애틀랜타 힙스타]
* 청춘도 사라졌다. 대출금을 다 갚은 날 스텔라는 몇방울 마른 눈물을 떨궜다.
* 이 관계도 엄연한 관계다. 미래로 축적되지 않는 관계라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계급의 완성]
* 생각이나 말이란 하면 할수록 젖은 솜처럼 무거워지는 법이었다.

[존재의 증명]
* 커피는 소환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
* 취향은 돈이 결정하지 않는다. 사람의 품격이 취향을 결정한다. 아니, 전제와 결론이 바뀌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깝다. 취향이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 취향이 곧 사람의 본질인 것이다. 기억은 사라져도 취향은 사라지지 않는다._정지아

+ 빛은 어둠에 자리를 내어줄 뿐,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유쾌하게, 물 흐르듯이 빨리 읽은 소설집. 단편 소설이 여러 개 묶여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작가의 시선이나 묘사가 내 맘에 너무 와 닿았다. 울고 싶은 날 보았더니 웃게 만들어 주었다. 작가라는 사람들의 거대한 생각의 바다는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이 책은 혜승언니로부터 왔고, 지희언니에게로 갔다. 그조차도 아주 기분이 좋다. 
by 군달 | 2021/11/01 12:21 | things on book | 트랙백 | 덧글(0)
2021년 06월 21일
No. 16 <차로 만드는 카페 음료>
4월에 내고 싶었는데 6월 중순이 지나서야 나오게 된 책.
차를 잘 알 지는 못하지만 즐겨온 지는 꽤 되었는데, 차를 바탕으로 하여 이렇게 다양한 음료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책 작업하면서 늘 그렇듯 많이 배웠고, 이토록 집요하게 내용을 정리한 저자들에게 감탄하고,
이런 음료를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 마감하면서 차에 대한 예찬 등을 찾아 보았고,
뒤표지에 몇 가지 정리해서 실었다.

그중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차는 액체로 된 지혜'라는 말이다.
오늘 아침도 액체로 된 지혜의 시간을 한번 누려본다.

이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여러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그 노고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책은 남다르게 좋은 정보를 담고 있다.
아무쪼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사랑 받고, 오래오래 닳도록 보는 책이 되길 바란다.

by 군달 | 2021/06/21 10:55 | things on me | 트랙백 | 덧글(0)
2021년 06월 21일
<고양이를 버리다>
*부모에게 '버려진다'는 일시적인 체험이 아이에게 어떤 마음의 상처를 주는지, 구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머리로 '이런 것을 테지'하고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유의 기억은 반드시 눈에 보이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그 깊이와 형상이 달라지는 일은 있어도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지 않을까?

* 사람은 누구나 많든 적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 실태를 말로는 타인에게 잘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이 있고, 그걸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다.

* 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현대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를-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 아마 나 같은 직업을 가진 인간에게, 사람의 머리가 좋고 나쁘고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좋은 머리보다는 오히려 마음의 자유로운 움직임, 날카로운 직감 같은 것을 중요시한다. 그런 부분은 아카데믹한 세계와 아주 다르다.

*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마치 요즘 젋은 세대 사람들이 부모 세대의 신경을 일일이 곤두서게 하는 것처럼.

* 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까. 그때 해얀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풍림을 스쳐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 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드렁 놓은 것이다.

* 나는 손을 움직여 실제로 문장을 쓰는 것을 통해서만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이렇게 기억을 더듬고, 과거를 조망하고, 그걸 눈에 보이는 언어로,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환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쓰면 쓸수록 그리고 그걸 되읽으면 되읽을수록 나 자신이 투명해지는 듯한 신비로운 감각에 휩싸이게 된다. 손을 허공으로 내밀면, 그 너머가 아른하게 비쳐 보일 듯한 기분마저 들 정도다.

* '내려가기는 올라가기보다 훨씬 어렵다'하는 것이다. 보다 일반화하면 이렇게 된다-결과는 원인을 꿀꺽 삼켜 무력화한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고양이를 죽이고, 어떤 경우에는 사람도 죽인다.

*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가령 그 한 방울이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 개체로서의 윤곽을 잃고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사라져간다 해도.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인 무언가를 환치되어가기 때문에 더욱이.

* 작가 후기
역사라는 건 그런 것이다. 무수한 가설 중에서 생겨난 단 하나의 냉엄한 현실.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 있는 피가 되어 흐르다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쓰인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하다. 아주 미소한 일부지만 그래도 한 조각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가오 옌 씨의 그림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묘한 그리움 같은 것이 느껴진다_2020년 2월
_무라카미 하루키 / 가오 옌 / 김난주





* 짧고 간결하지만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나라는 존재와 세계, 그리고 역사와 미래를 이런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주어서 놀랍고 고마운 경험. 어른스럽지 못했는데 조금 더 어른스러워진 기분이랄까.
by 군달 | 2021/06/21 10:41 | things on book | 트랙백 | 덧글(0)
2021년 06월 17일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
*"나는 나비가 되고 싶어. 방랑자처럼 살면서.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면 죽어가면서."M.C비터의 <매춘부의 죽음> 중 T.H. 베일리의 글귀. ... 울가망했다. 그 허망함, 그 연약함, 그 오만함, 그 초연함, 유치찬란하고 아름다운 꿈을 품던 뭘 모르던 시절.

* 혹독한 추위는 악의에 찬 듯이 느껴지는데 혹독한 더위는 가혹한 무심함이 느껴진다.

*어떤 책은 세상을 이기는 힘을 키워준다.

*직업, 밥벌이와 자아실현의 그 어디쯤

*오십대에 접어들면 대개 사람은 단지 좀 노쇠했을 뿐인데, 엄청나게 많은 것을 잃은 것으로 착각한다. 행복과 아름다움은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내 이십대 삼십대는 햇빛 찬란하게 행복했나? 아니다. 삶이나 세계에 대해 알지 못해서 혼란스러웠고, 정리되지 않은 욕망의 풋내로 비릿해다.

* 종종 젊음을 흘깃거리게 되는 건 향수 때문이다. 젊음은 우리의 고향이며 모든 추억은 아름답다. 나이가 든다는 건 실향민이 된다는 거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고향 타령을 하면서 징징거리지 말자.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다._황인숙





+캣맘이 캣맘에게 빌려준 캣맘 산문집. 나 역시 젊음이라는 고향을 둔 실향민이 되어 가고 있다. 멋지지 않은가, 고향이 없을 때보다 훨씬 아름다운 시간들이 앞으로 펼쳐진다는 이야기다. 오늘 하루가 내 고향이 된다니! 역시 시인의 세계관은 아름답다. 그나저나 해방촌 가서 황 시인과 함께고양이 밥 주고 싶다. 나역시 기승전 '고양이' 'ㅁ'

by 군달 | 2021/06/17 17:53 | things on book | 트랙백 | 덧글(0)
2021년 05월 26일
눈이 부시게_김정희
오늘도 네가 잠든 서쪽 귀퉁이가 흘러내렸다
일기장 속 네 이름도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그래서 나는 서쪽 귀퉁이가 없는 사람
아침마다 내 굽은 어깨 위에서 지저귀던 휘파람새도 날아가 버렸다

남쪽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지웠는지 바람에 지워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곳저곳이 오래된 스웨터처럼 올이 풀렸거나 구멍이 나 있다
내 얼굴이 흘러내리는 이유다
늙은 고양이가 내 손등을 핥는다

눈을 뜨고 나면 세상은 한 뼘씩 줄어들고
시간은 다리가 길어져 담벼락을 돌아 사라져 버린다
어제는 분명 장마였는데 오른은 빈 가지에서 새싹이 돋고 있다

안녕하세요
나는 뒤통수를 잊은 사람
눈을 가린 바람처럼 달리던 사람
안녕하세요
읽는 순간 사라지더라도
남은 페이지마다 줄을 긋는다
빈 빨랫줄처럼 허공에 검은 줄만 넘실거린다

눈이 부시게 푸른 5월
북쪽 모서리에서 나를 보거든
서어나무 걸린 동쪽의 햇빛 한 조각
바람의 손끝에서 풍기는 남쪽의 냉이꽃향기
너의 눈동자를 물들인 석양 한 줄기 물어다
내 가슴팍에 꽂아 주기를
희미해지는 기억으로
너를 생소하게 보더라도
안녕하세요
웃으며 휘파람새처럼 인사해 주기를




+ 눈부시게 푸른 5월 세상을 져버린 친구가 편하게 떠나기를.  그제 죽고, 오늘 한 줌 재로 돌아가 아빠 곁에 갔겠구나. 부디 마음의 부침 없는 그곳에서 이곳에 남은 사람들 어여삐 보아주기를 바란다. 이 시를 처음 읽은 날 이유 없이 눈물이 펑펑 났다. 내 안에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만 나는 그게 무엇인지 가려낼 수가 없었다. 마음이 굳기 일쑤인 요즘 같은 때 한 방 크게 맞고 마음이 흔들거리니 참 좋은 시인 것 같다.
by 군달 | 2021/05/26 12:46 | things on poem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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